본문 바로가기
문학을 위한 서랍/책은 도끼다

이오덕의 글쓰기

by 새의날개 2020. 2. 27.

  민주주의가 언론의 자유로 태어나듯이,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나게 하고 앞날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주는 일-바로 아이들의 목숨이 피어나게 하는 일은 자유로운 표현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민주교육도 표현 교육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목숨을 풀어놓아 주는 교육부터 앞장서서 하자. 그리고 모든 교사들이 목숨 살리는 교육을 하는 운동을 펴 나가자. 목숨을 억누르는 야만인이 되느냐, 목숨을 지키고 키우는 영광스런 겨레의 교육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모든 교육자들이 결정해야 할 엄숙한 과제다. 29p

 

  자기를 표현하는 데 가장 쉽고 널리 쓰는 수단이 말이다. 말을 못 하게 했을 때 사람의 표현은 우선 막혀 버린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말을 자유롭게 정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슨 똑똑한 아이를 키운다는 정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목숨을 짓밟아 버리지 않고 고이 피어나게 하는 생명 구원의 교육이란 자리에서 그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54p

 

  올바른 글쓰기 지도를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교육의 목표를 확실하게 잡아 두어야 한다. "아이고, 글쓰기 지도의 기술이나 방법 같은 것을 말할 일이지, 교육학 책에나 나올 것 같은 목표니 뭐니 하고 있어" 이렇게 말할 독자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목표가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다 헛된 일이다. 헛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만 못한,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해치는 결과가 된다.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 글을 쓸거리를 찾고 정하는 단계에서, 쓸거리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가운데서, 실지로 글을 쓰면서, 쓴 것을 고치고 비판하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삶과 생각을 키워 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소박하고 솔직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할까? 풍부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할까?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게 할까? 사람다운 행동을 하게 할까? 창조하는 태도를 가지게 할까? 이런 것이 목표가 된다. 참된 사람, 민주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을 기르는 데 글쓰기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글쓰기는 참으로 귀한 수단이다. 목표는 사람이고, 아이들이고, 아이들의 목숨이고, 그 목숨을 곱게 싱싱하게 피어나게 해 주는 것이지, 글이 목표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55p

 

  글의 가치는 그 글의 길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문장을 꾸며 만드는 손재주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근사하게 쓴 것 같아도 읽는 이가 감동을 못 받으면 좋지 않은 글이다. 서투르게 보여도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면 좋은 글이다. 60P

 

  왜 정직한 글을 쓰게 해야 하나?

 첫째, 아이들의 삶과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둘째,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가꾸기 위함이다.

 셋째, 아이들에게 자기의 삶을 바로 보고, 삶을 다져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69-70p

 

  다만, 글에 나타난 아이의 행위나 생각이 옳든지 잘못되었든지, 정직하게 쓴 태도 자체를 잘못이라고 나무라서는 안 되며, 어떤 글이라도 정직하게 썼다면 먼저 정직하게 썼다는 점에서 칭찬해 주는 것이 좋다. 73p

 

  글을 정직하게 쓰는 태도가 어느 정도 되었으면 그다음에는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 곧 가치 있는 글을 쓰도록 지도하는 단계가 된다.

...가치 있는 글이란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이 걱정을 하고, 마음에 안고 있는 문제를 이야깃거리로 잡은 글이라 할 수 있다.

... 남들이 재미있게 읽어 주고 함께 느낄 수 있는 글로 써야 하는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알기 쉽고 친절하게 쓰도록 하는 까닭이 이러하다.

  가치 있는 글을 쓰게 하는 일은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는 일이다. 76-78p

 

<지도하는 단계>

  글쓰기 지도는 글감(쓸거리) 정하기, 얼거리 잡기, 적기, 다드기, 발표하기, 글 맛보기와 비평-의 여섯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4) 다듬기(고치기)

  글 다듬기 지도는 아주 중요하지만 지도교사가 바로 아이들의 글을 고치거나 고치게 할 경우 열 가지 가운데 여덟 가지는 잘못 고친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교사는 될 수 있는 대로 아이들의 글을 고치지 말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좋다. 자기의 글 버릇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95p

... 이 자기 글 다듬기는 글 다듬기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게 하면 읽는 동안에 틀린 글자, 빠뜨린 글자를 찾아내게 되고, 글의 줄거리나 말이 잘못된 것도 깨달을 수 있다. 고학년에서는 낭독도 할 수 있지만, 대개는 눈으로 읽게 한다. 

6) 글 맛보기와 비평

  글을 보는 점은 두 가지로 나눈다. 그 하나는 글에 나타난 글쓴이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가 어떤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문장 표현이 잘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96-97p

 

  삶이 있는 글을 쓰자. 삶을 쓰자. 그 삶은 남의 삶이 아닌 나 자신의 삶이다. 지금까지 보잘것없다고 생각하여 덮어 숨기고 멸시해 온 내 것, 우리 것을 다시 찾아내어, 그 가난하고 조그마한 것들을 귀하게 아끼고 드러내어 보이고, 고이 키워 가야 한다. 눈부신 황금으로 빛나는 글의 보물 창고는 먼 어느 나라의 화려한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걸린 무지개 너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걱정과 한숨과 웃음과 눈물과 고뇌로 얼룩진 우리들 나날의 삶, 나 자신의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삶의 글은 삶의 말로 써야 한다. 삶의 말은 나날이 쓰는 정다운 우리들의 말, 나 자신의 말이다. 빌려온 말, 유식을 자랑하는 말, 남의 말이 아닌 쉬운 우리말이다. 사실을 보여주는 말, 진실을 느끼게 하는 말, 가슴에 바로 와닿는 말이다. 114-115p

 

  그러니까 글쓰기를 할 때 아이들에게 편하게 '생각'을 쓰라고 강조해서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생각'보다도 '행위'요, '행동'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였다는 '서사문' 쓰기가 중요한 까닭이 이렇다. 바로 자기가 한 일을 쓰게 되면 거기서는 남의 글이나 말을 흉내 낼 필요가 없게 되고, 도리어 그런 흉내는 방해만 된다. 정직한 글, 살아 있는 글은 이렇게 해서 나온다. 본 대로, 들은 대로, 한 대로 쓰는 이 서사문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다. 초등학생 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도 이 서사문 쓰기 공부를 가장 힘들여해야 한다.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감상문 쓰기도 서사문 쓰기에서 발전해야 된다.

  서사문 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글쓰기란 삶을 쓰는 것, 삶을 키워 가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121-122p

 

  시를 쓸 때는 먼저 쓰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자기가 겪은 일을 다시 잘 생각해 내어서 그 일을 지금 막 그 자리에서 그대로 겪는 것처럼 생생한 말로 써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어린이들이 쓴 감동이 담긴 시를 가끔 읽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168p

 

  우리는 늘 버릇처럼 아이들에게 말한다.

  "글을 어렵게 여기지 마라. 말하는 것처럼 쉽게 쓰면 된다."

  이 말을 나는 글쓰기 지도를 하는 선생님들에게 그대로 말해 주고 싶다.

  "글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발 아이들같이, 초등학생들같이 써 보세요. 초등학생들만큼 쉽게 쓰면 됩니다. 결코 어렵게 써서는 안 됩니다. 대학교수들이 쓰는 논문같이 써서는 안 됩니다. 그게 거의 모두 엉터리 글입니다. 초등학생들이 쓰고 있는 글, 그 글이 가장 깨끗한 우리말로 된 글입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한테 배워야 합니다. 그 많은 학생들에게 배울 수 있는 선생님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181p

 

  이 글은 어느 날 어디에서 누구하고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를 쓴 글, 곧 서사문이다. 이렇게 자기가 바로 보고 듣고 한 것을 쓰는 글이 가장 많이 쓰는 글이고, 또 많이 쓰도록 해야 하는 글이다. 글쓰기로 삶을 가꾼다는 것은 이와 같이 자기가 한 것을 정직하게 쓴 다음 그 글에 나타난 생각이나 태도가 어떤가? 그 글이 정말 거짓 없이 자세하고 정확하게 써졌는가를 살피고 비판하고 반성하여 더 나은 생각과 태도를 가지게 되고 더 나은 글을 쓰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211p

 

  교육자들은 이런 글과 이런 글을 쓰는 아이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은 전문 지식과 교양을 요구하는 것이고 높은 인격을 갖추어야 해낼 수 있는 직업이다. 그렇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고 해서 마구 잡아 족치고, 선생님들이 잘못했다는 글을 썼다고 해서 모조리 불량 학생으로 불도장을 찍는다면 그게 무슨 교육자라 하겠는가? 군대를 훈련하는 교관일 뿐이다. 248p

 

  참된 시를 아이들에게 쓰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아이들이 지금까지 강요받아 온 그 형식에서 시원스럽게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형식에 갇혀 있으면 흉내밖에 낼 것이 없다. 그래서 남들이 흔히 쓰는 내용과 말을 쓰지 않았다면, 그리고 엉뚱한 말이 되었다면, 그런 글을 주의해 보아야 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시는 그런 엉뚱한 말, 뜻밖의 말에 있으니까. 260p

 

  지금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글쓰기 지도의 일반 목표는 아이들에게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쓰게 하는 것이다. 글을 쓰다가도 '이것은 제목에 맞지 않으니까 안 써야지'하는 생각에 매이지 않고 쓰고 싶은 것을 거리낌 없이 쓰게 할 일이다. '이것은 제목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쓰지 말아야지'하는 태도는 '이 이야기는 선생님이 반가워하지 않으니까, 이런 제목은 남들이 비웃을 것 같으니까 쓰지 말자' 그래서 '보기 좋은 것,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이나 찾아내어 쓰자'고 하는 태도가 되어 버린다. 309p

 

  아이들이 버릇이 없게 되는 까닭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어른에 딸린 물건으로, 장난감으로 여겨서 기분대로 대하고 키우기 때문이다. ㄱ씨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존대어"를 쓰지 않는다고 걱정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버지라 말할 줄 모르고 아빠라고 말하는 것은 부모의 잘못이지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말이고 행동이고 아이들은 어른이 하는 대로 따른다. 어른은 쌍소리고 욕설을 마구 하면서 아이들한테만 "너희들은 고운 말을 써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듣겠는가? 어른은 온갖 못된 행동 다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착한 일 하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착한 사람이 되겠는가? 교육은 몸으로 행동하는 것이지 결코 말로써 할 수 없다. 323-324p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나에게 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분이 날 15년 동안 키워 준 사랑스런 엄마.

너무나 모순이다, 모순. 세상은 경쟁! 공부! 공부! 아니 대학! 대학!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고 고개 들고 다니라고 하는 공부.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이 사회에 봉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 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뭘 해? 나만 편안하면 뭘 해? 매일 경쟁!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 들어가는 내 심장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도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내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 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떤다.

하지만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아, 차라리 미워지면 좋으련만, 난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가는 엄마를 구해야만 한다. 내 동생도 방황에서 꺼내 줘야 한다. 난 그것을 해야만 해, 그치?

...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 생각지 않아. 그것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375-376p

 

  여기서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문교부(지금의 교육부)가 학생들에게 길러 주어야 한다고 해서 들어 놓은 이 세 가지 능력이다. 이것들은 아이들이 글을 쓸 때 익혀 가져야 할 능력이 결코 될 수 없다. 아이들이 글을 쓸 때 먼저 어떤 목적과 대상과 상황을 설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내용을 "생성해 내"고, 그다음 그 내용을 글의 짜임에 맞게 조직하고, 다시 그 조직한 내용을 적당한 말로 표현하게 되는가? 어느 아이가 글을 쓸 때 이런 차례로 쓰겠는가? 문인들도 이런 차례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이것은 어떤 포악한 독재 권력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나 하는, 아이들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사람을 모조리 허수아비로 만드는 비참한 교육이다. 만약 학생들에게 이런 꼴로 글쓰기를 가르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되겠는가?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일에 대해서는 아주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글을 쓰도록 가르쳐서는 백 년을 가도 단 한 편의 살아 있는 글-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도 결코 써질 수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을 받아 모든 아이들의 삶과 마음이 병들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아이들이 쓰는 글은 쓰고 싶어 하는 내용, 곧 보고 듣고 일하고 놀고 생각한 체험의 사실이 먼저 있는 것이지, 관념이나 목적이 앞서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 382p


  늘 말로만 듣던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이제야 읽었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글쓰기와 독서와 교육에 관한 생각을 많이 바꿔주셨다. 난 사실 그동안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일기를 매주 2회씩 10줄 이상이라는 조건으로 숙제를 내줬다. 지금은 매우 부끄럽다. 선생님 말씀처럼 분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이 정직하게 들어가 있어, 그걸로 삶을 가꾸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중간에 <H에게>라고 전해지는 공부만 하는 학생의 유서는 지금 읽어도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1980년대의 글이니 벌써 30년도 더 되어 가는 일인데 교육은 여전히, 아니 더욱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이들은 열심히 외우고 문제를 풀어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을 목표로 공부한다. 그래서 "내가 쟤보다 열심히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가져가는 게 옳아요. 정의로워요."라고 생각하는 학생을 키운다. 나도 그렇게 자랐고. 그런데 말이다. 이 글을 읽고 하다 보니, 완고하던 나도 생각이 변한다. 우리 교사의 존재 이유는 학생을 1등으로 잘 만들어주기 위한 걸까? 나머지 학생들은 어떻게 해? 그들은 누가 보살피지? 열심히 안 해서 떨어지는 아이들에게는 "네가 노력하지 않은 것의 결과야. 그러니까 진작 열심히 하지 그랬어."라고 말하며 평생을 학생 시기에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제명을 시키고,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들에겐 "어쩔 수 없어. 성적이 모든 걸 말해. 억울하면 재수해."라고 말하며 희생을 강요하고. 문제 풀이 스킬을 가르치고... 이런 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육자인가? 절대 아니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교육자는 무엇인가? 나는 이 책을 읽고 일단 가안을 작성해놓는다. 

아이들의 삶을 가꾸고, 스스로 가꿀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교사. 

그러려면 나부터 꾸준히 삶을 가꾸는 글을 써야 한다. 

'문학을 위한 서랍 > 책은 도끼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0) 2020.04.07
총균쇠  (0) 2020.03.27
모스크바의 신사  (0) 2019.12.21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0) 2019.11.22
그리스인 조르바  (0) 201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