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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위한 서랍/책은 도끼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by 새의날개 2020. 4. 7.

  파잔(phajaan)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 야생에서 잡은 아기 코끼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 뒤 저항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날을 굶기고 구타하는 의식, 절반의 코끼리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지만, 강인한 코끼리는 살아남아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코끼리는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을 테지만, 그들의영혼은 산산이 부서지고 본능의 심연에서 어렴풋하게 냉혹한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엄마를 찾아선 안 된다는 것과, 몽둥이의 고통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코끼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다.자유를 향한 자기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척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는 매 맞는 코끼리였고, 다른 곳에서는 몽둥이를 든 자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내가 피해자였는지 가해자였는지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이미 파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4-5p

 

  과학과 유사 과학의 차이는 그 이론이 많은 것을 맞히느냐가 아니라 반대로 그 이론이 틀릴 가능성을 갖느냐, 즉 반증될 가능성을 갖고 있느냐에 있다. 점성술과 사주가 과학이 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틀릴 가능성 자체가 없어서다. 83p

 

아르주나의 고민은당시 인도인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것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모든 인간의 고민이다. 그렇지 않던가?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의지를 상실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부모로서의 의무, 자녀로서의 의무, 학생으로서의 의무, 직장인으로서의 의무, 시민으로서의 의무등, 우리가 그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주저할 때, 크리슈나는 우리에게 지혜롭게 말해주는 것이다. 네가 준비해왔던 바로 그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행하라. 다만 그것의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 그럴 때 너의 마음은 평온해질 것이고, 자유로워질 것이며, 네 안의 신에게 다가가게 될 것이다. 231p

 

  모든 고전이 그러하듯 좋은 텍스트는 해석과 함께 매 순간 다시 탄생하는 것이니 말이다. 265p

 

... 이러한 전제에서 노자는 높은 덕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것은 자신의 덕을 내세우지 않고 그 무엇도 억지로 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다. 반대로 낮은 덕은 어떻게든 자신의 덕을 돋보이려 애쓰고 억지로 덕을 만들어내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273p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거 289p

 

... 내가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것을 심판하는 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나의 마음이어서다. 378p

 

... 철학과 교수가 된 이후 칸트는 11년 동안 논문을 발표하지 못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깊은 사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1781년, 58세의 나이에 <순수이성비판>을 출간했다. 449p

 

당신은 인간이 의심할 수 없는 앎, 즉 확실한 지식과 진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이러한 질문은 현대인의 세련된 감성에는 너무도 고리타분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질문 자체를 의심한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확실한 것이란 애당초 없다. 이러한 입장을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질문 자체를 무력화한다.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은 뭔가 쿨해 보이는 면이 있다. 그리고 어려운 질문을 그럴싸하게 회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편하고 효율적인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의주의는 선택하기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 없이 선택하는, 가장 무성의한 대답이기도 하다. 서양 철학이 오늘날까지도 학문의 기초가 되고 높게 평가되는 것은 무수히 많았던 회의주의적 대답 속에서 어렵게 진리의 토대를 쌓아온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456p

 

  다음으로는 당신 인생에 대한 존재론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세계관'이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는 세계관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슬픈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수감자라는 것을 모르는 수감자와도 같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세계관은 감옥이다. 감옥 안에 있는 자에게는 감옥 밖의 한 줌의 공간도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세계관은 당신 내면의 감옥이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 세계관 안에서 탄생하고 성장하며 죽는다. 그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고, 심지어 그 바깥이 있는지조차 상상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태어나서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고 기독교도로 죽는다. 그는 한 번도 불교의 세계관에, 이슬람의 세계관에, 유물론의 세계관에 발을 디뎌보지 않고 자신의 세계가 전부라고 믿으며 눈을 감는다. 어떤 이들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태어나 불교인으로 성장하고 불교도로 죽는다. 그는 한 번도 다른 세계관에 발을 디뎌보지 않고 눈을 감는다. 어떤 이들은 유물론자로 태어나서 유물론자로 죽고, 어떤 이들은 실용주의자로, 어떤 이들은 허무주의자로, 어떤 이들은 과학주의자로 태어나고 성장했으면서도자신에게는 세계관 같은 건 없다고 믿으며 눈을 감는다.

  세상 모든 이가 각자 발 딛고 있는 수많은 세계관을 가장 근원적인 기준으로 나눈 것이 일원론과 이원론이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보고, 세계가 자기 내면의 반영임을 매 순간 느끼며 성장하다가죽는다. 어떤 이들은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이미 존재하는 세계 위를 걸어 다니는 존재라고 매 순간 인지하며 성장하다가 죽는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원론의 세계관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심지어 그 바깥이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인상적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느낌과 상념이 사실은 우리가 이원론의 세계관 위에 발 딛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갖게 된 것들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눈앞의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도, 그래서 마음이나 정신은 소홀히 하고 눈앞의 물질 세계에 마음이 빼앗기는 것도, 세계와 자아를 독립된 실체로 느끼며 자신이 소멸한 이후에도 세계가 존속할 것이라고 믿는 것도, 그러니 나의 인생이라는 것은 덧없고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도, 나의 내면은 보이지 않으니 그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게 되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자아와 세계를 나누는 이원론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갖게 된 사유의 흔적들이다. 

  우리가 이원론을 넘어 일원론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 한 발을 내디뎌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잃어버린 절반의 세계인 일원론의 세계, 그곳의 주인이 원래 당신이기 때문이고, 당신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곳은 깊은 어둠 속에 버려져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외부의 폭풍을 가라앉히고 내가 가진 모든 선입견을 판단중지 한 후, 내면의 가려진 대륙을 향해 발을 내디뎌 보자. 고대의 위대한 스승들이 그 깊은 곳에 출구가 있다고, 그 출구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주고 있으니. 548-550p

 


 

 타이핑이 도중에 날아가서 두 번을 썼다. 정말 화가 많이 났는데 다 쓰고 나니 조금 차분해지네. 후. 임시저장을 종종 눌러야 하는데 너무나 귀찮다. 

  채사장만 보고 책을 샀는데 전작부터 뭔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 정신세계, 의식 등 내가 관심 없는 부분을 장황하게 설명하니 더 읽기가 어렵다. 이제 채사장의 책을 읽어도 큰 깨달음은 없다. 내가 더 성장했다는 증거다. 나에게 울림을 주는 책은 이제 인류의 고전들이다. 조금씩 자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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