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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위한 서랍/책은 도끼다

총균쇠

by 새의날개 2020. 3. 27.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질문을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 그러한 속도 차이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하나의 경향이며 또한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21p

 

이 책에서 그와 같은 문장을 만들자면 다음과 같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35p

 

  얄리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책을 쓰려고 하는 저자는 그러한 학문 분야의 다양성 때문에 몇 가지 문제에 부딪힌다. 진전된 연구 자료 중에서 적절한 것들을 골라 종합하려면 우선 저자는 앞서 언급한 분야들을 모두 아우르는 전문 지식을 가져야 한다. 각 대륙의 역사 및 선사 시대에 대한 자료도 마찬가지로 종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책의 소재는 역사지만 접근 방법은 자연 과학, 특히 진화 생물학이나 지질학 같은 역사적 과학의 접근 방법이다. 그리고 저자는 수렵 채집민 사회로부터 우주 시대의 현대 문명에 이르는 다양한 인간 사회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여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몇 가지 요건들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여러 명의 저자가 공동 작업을 해야 할 일처럼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통일된 종합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비록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저자는 단 한 명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한 명의 저자가 그 많은 학문 분야의 자료들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크나큰 노고를 감수할 수밖에 없고, 또한 각 분야의 많은 동료들로부터 지도를 받아야 할 것이다. 36p

 

... 유럽인들이 가져온 각종 질병은 남북 아메리카 전역에서 유럽인 사이에서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각 부족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죽어간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는 콜럼버스 이전 인구의 95% 수준으로 추정된다. 108p

 

  지금까지 우리는 식량 생산이 토착적으로 시작된 지역이면서도 서로 대조적인 세 곳의 예를 살펴보았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한쪽 극단에 속하고 뉴기니와 미국 동부는 반대쪽 극단에 속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여러 민족들은 훨씬 일찍부터 토종 식물을 작물화했다.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종들을 작물화했고 훨씬 더 생산적이거나 소중한 종들을 작물화했다. 또한 농작물의 유형들도 훨씬 다양했고 집중적인 식량 생산을 발전시켰고 조밀한 인구를 더 빨리 증가시켰다. 결과적으로 근대에 들어오면서 더 진보된 기술, 더 복잡한 정치 조직, 그리고 다른 민족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유행병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 뉴기니, 미국 동부 사이의 그러한 차이점들이 각 지역의 민족이 가진 취약점이 아니라 야생 동식물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했다. 228p

 

  그러므로 유럽인들이 들어올 때까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북아메리카산 사과를 작물화하지 못한 이유는 그 지역 사람들 때문도 아니었고 사과 때문도 아니었다. 사과의 작물화에 필요한 생태학적 선행 조건을 본다면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농경민들은 유라시아의 농경민들과 마찬가지였고 북아메리카의 야생 사과도 유라시아의 야생 사과와 마찬가지였다. 사실 독자들이 지금 이 장을 읽으면서 먹고 있는 사과, 즉 슈퍼마켓에서 파는 사과의 일부는 최근에 유라시아의 사과와 북아메리카의 야생 사과를 교배시켜 개량한 변종이다. 그러므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과를 작물화시키지 못한 이유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주어진 야생 동식물 전체의 문제였다. 그 동식물들이 가축화, 작물화에 그다지 유망하지 않아서 북아메리카에서는 식량 생산이 늦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33p

 

...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듯이 고대 문자의 주된 기능은 '타인의 예속화를 돕는 일'이었던 것이다. 비전문가들이 문자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 즉 문자 체계가 점점 간소해지고 표현력도 늘어난 뒤의 일이었다. 342p

 

  이처럼 낯익은 사례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밖의 중요한 발명품들도 모두 필요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수많은 발명품, 또는 대부분의 발명품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이것저것 주물럭거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발했고, 그들이 염두에 둔 제품에 대한 수요 따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일단 어떤 물건이 발명되면 그때부터 발명자는 그것의 용도를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상당 시간 사용된 이후에야 비로소 소비자들은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또 어떤 물건은 어느 한 가지 용도를 위해서 발명되었지만 결국에는 오히려 예기치 못했던 다른 용도에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렇게 어느 한 가지 쓸모를 위해 만들어졌던 발명품들 중에는 현대에 이루어진 중요한 기술적 혁신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비행기와 자동차, 내연 기관과 전구, 축음기와 트랜지스터 등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일 때가 더 많다. 352p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가장 유명하고 틀림없이 현대의 발명품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해 'X가 Y를 발명했다'는 뻔뻔한 주장 뒤에는 그보다 앞서 만들어졌는데도 무관심 속에 잊힌 전 단계의 형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우리는 '제임스 와트가 1769년에 증기 기관을 발명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는 주전자 주둥이에서 김이 솟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멋진 이야기는 불행히도 허구일 뿐이고 실제로 와트가 그런 증기 기관을 만들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은 토머스 뉴커먼의 증기 기관을 고치던 중이었다. 그것은 뉴커먼이 56년 전에 발명한 증기 기관이었고, 와트가 수리 작업을 하던 시기에는 이미 영국에서 100대 이상 제조된 후였다. 

  그리고 뉴커먼의 증기 기관도 실은 영국인 토머스 세이버리가 1698년에 특허를 받은 증기 기관의 뒤를 이은 것이었고, 그것 역시 프랑스인 드니 파팽이 1680년경에 설계한(그러나 제작하지는 못했던) 증기 기관의 뒤를 이은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 그것보다 네덜란드 과학자 크리스티안 호이헨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먼저 있었다. 그렇다고 와트가 (별도의 증기 콘덴서와 복식 실린더를 설치함으로써) 뉴커먼의 증기 기관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사실이나 뉴커먼이 세이버리의 그것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사실까지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웬만큼 기록이 남아 있는 현대의 모든 발명품에서 두루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발명품을 만들었다고 흔히 알려진 영웅들도 사실은 그 이전에 비슷한 목표를 위해 설계도를 작성하고 실용 모델이나 아니면 (뉴커먼의 증기 기관처럼)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낸 다른 발명가들의 뒤를 이은 사람들이었다. 에디슨이 1879년 10월 21일 밤에 '발명'했다는 백열전구도 실은 1841년~1878년에 다른 발명가들이 특허를 얻은 수많은 백열전구를 개량한 것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라이트 형제가 만든 유인 동력 비행기의 경우에도 그보다 앞선 오토 릴리엔탈의 유인 무동력 글라이더와 새뮤얼 랭글리의 무인 동력 비행기가 있었다. 새뮤얼 모스의 전신기의 경우에도 조지프 헨리, 윌리엄 쿡, 찰스 휘트스톤 등의 전신기가 앞선 것이다. 그리고 엘리 휘트니가 단섬유(내륙형) 목화를 다듬기 위해 만든 조면기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장섬유(시아일랜즈형) 목화를 다듬는 데 이용되었던 조면기를 개량한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와트, 에디슨, 라이트 형제, 모스, 휘트니 등이 기존의 발명품을 크게 개선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거나 향상시킨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제품의 발명자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의 그 같은 공헌이 없었다면 그러한 발명품들의 형태는 다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일부 천재 발명가들이 어느 특정한 시대에 특정 장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과연 세계사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겠느냐는 점이다. 대답은 명백하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루 인정받는 유명한 발명가들에게는 항상 유능한 선후배가 있었고 사회가 그들의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시기에 발명품을 개량했던 것이다.

...

나의 주된 두 가지 결론은, 기술이란 어느 영웅의 개별적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 그리고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355-356p

 

...따라서 유라시아는 처음부터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1492년에 와서는 엄청나게 앞서게 되었다. 그것은 유라시아 인들의 지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뉴기니인들 중에는 잠재적인 에디슨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천재성을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활용했다. 즉, 축음기를 발명하는 문제보다는 뉴기니의 정글에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살아남는 문제에 주력했던 것이다. 383p

 

*정복의 궁극적 요인인 식량 생산과 가축화, 작물화의 상관성

*정복의 직접적 요인-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 문자

  그런데 이 같은 해로운 병원균의 대륙간 차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유용한 가축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혼잡한 인간 사회에서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은 대부분 가축에게 전염병을 일으켰던 유사한 조상 세균이 진화한 것이다. 식량 생산자들은 약 10000년 전부터 날마다 가축과 가까이 접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에는 가축의 종류가 많아서 그런 세균도 많이 생겼지만 남북 아메리카에는 둘 다 별로 없었다. 530p

 

  유럽이 남북아메리카를 정복한 배후에 감춰져 있는 또 하나의 직접적인 요인으로서 병원균에 버금가는 요인은 바로 모든 기술적 측면에서의 차이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같은 차이는 식량 생산에 의존하는 사회(인구가 조밀하고 경제적으로 전문화되고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되며 또한 상호 작용을 하면서 경쟁하는)의 역사가 유라시아 쪽이 훨씬 더 길었기 때문에 생긴 차이였다. 기술에 대해서는 특히 다섯 분야를 특기할 만하다.

1. 금속 2. 군사 기술 3. 기계를 움직이는 동력 공급원(가축, 풍차, 수차 등) 4. 육상 운송(바퀴) 5. 해상 운송

 

  유라시아 사회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는 병원균과 기술뿐 아니라 정치 조직에서도 차이가 났다... 유라시아의 많은 국가와 제국에는 국가를 응집시키는 국교가 있어 정치적 지도자를 정당화하고 타국에 대한 전쟁에 찬동하는 일에 한몫했다. 유라시아에 존재하던 부족 및 무리 사회는 북극 지방의 순록 목축민, 시베리아의 수렵 채집민, 인도 아대륙 및 열대 동남아시아의 수렵 채집민 집단 등이 고작이었다. 

 

  마지막으로 논의해야 할 직접적 요인은 문자다. 유라시아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국가에 문자를 아는 관료들이 있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상당수의 일반 대중들도 문자를 알고 있었다. 문자는 정치적 행정 및 경제적 교환 등을 도왔고 탐험 및 정복의 동기를 부여하고 길잡이가 되었다. 또한 머나먼 시대나 장소에 대한 각종 정보와 사람들의 경험을 알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유럽 사회에 힘을 부여했다. 반면 남북 아메리카에서는 문자 사용이 중앙아메리카의 한 좁은 지역, 그것도 엘리트 계급에만 국한되었다. 더구나 잉카 제국은 매듭(이른바 결승 문자)을 바탕으로 한 회계 체계와 기억을 돕는 고안물을 사용하긴 했지만 상세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문자 수준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529-534p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리적, 생물지리학적 우연(특히 두 대륙의 면적, 축의 방향, 야생 동식물 등)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591p

 

  간단히 말해서, 과학 분야 중에서 역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작용하는 변수들도 소수에 지나지 않은 분야의 문제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인류사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점은 나도 시인한다. 그러나 몇몇 분야에서는 이미 역사적인 문제들을 분석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론들을 속속 얻어냈다. 그리하여 공룡, 성운, 빙하 따위의 역사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문학보다 과학에 더 가까운 분야라는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내성을 통하여 훨씬 더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공룡의 행동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의 행동에 대해서다. 따라서 나는 인간 사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공룡에 대한 연구에 못지 않게 과학적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일들이 현대 세계를 형성했고 또 어떤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보탬이 될 것임을 낙관하고 있다. 622p

 

*왜 중국이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는가

...나는 '최적 분열 원칙'을 보았다. 궁극적인 지리적 요소로 인해 중국은 일찍 통합이 되었고 그 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통합을 유지한 반면, 유럽 대륙은 분열되어 있었다. 분열된 유럽은 박해받는 개혁자에게 피난처와 그 외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각 나라 사이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기술, 과학, 자본주의의 진보를 육성했지만, 통합된 중국은 그러지 못했다.

... 정치적 분열은 경쟁을 위한 건설적인 토론의 장을 제공했다는 점 외에도 좀 더 복합적인 효과를 낳았다. 예를 들어 경쟁은 건설적인 만큼 파괴적이라는 사실이다(제1, 2차 세계 대전을 생각해보라). 분열 자체는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면적인 개념이다. 혁신에 미치는 분열의 영향은 자유와 같은 요소들에 의지한다. 자유로운 사상과 인간은 파편화된 그들이 각각 별개의 것이거나 단지 서로를 복제한 것에 불과하든 간에 그 파편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를 수 있다. 그 분열이 '최적'인지 아닌지는 당시에 적용된 최적의 기준에 따라 변할 것이다.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최적 상태의 정치적 분열이라 할지라도, 경제적 생산성, 정치적 안정성, 인간 행복에는 최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661p

 


 

 

  한 달여에 걸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드디어 완독했다. 2월 28일부터 3월 25일까지 읽었으니 꼬박 한 달이다. 하라리 시리즈와 코스모스 때보다는 다소 줄어든 느낌이다. 물론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총균쇠는 이런 색(color)이구나' 정도는 충분히 느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주장을 논증하는 글이라 큰 감흥이 없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 하나의 문장을 증명하기 위해 대륙 간, 대륙 내 비교를 했고, 수많은 사례를 들었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의 차이는 축의 방향과 장애물의 유무, 가축화,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동식물의 종류 /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 문자에서 비롯되었다. 그래, 그러면 조건이 같은 유라시아 대륙 내에서 유럽과 중국은 왜 다르지?'라는 질문이 떠올랐었는데 이어 설명하고 있어 놀랐다.

  다이아몬드는 그 답을 '분열'에서 찾았다. 유럽은 분열되어있어 서로 경쟁하며 발전했지만, 중국은 통합되어 있었기에 몇몇 잘못된 지도자의 후진적인 판단에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 사소한 차이가 오늘의 큰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분열'을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독선' 역시 못지 않게 위험하구나 싶다. 

  하라리의 책보다는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역시 묵직한 무언가가 남는다. 이 맛에 이런 책을 읽는 거지. 다음 책은 다이아몬드의 '대변동'인데 소설을 좀 읽고 읽어야지. 소설 없이 비문학만 읽어대니 퍽퍽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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